유학시절 사회정의 수업 시간에 이란 영화를 한 편 보았다. 그 영화에서 테러리스트로 등장하는 사람은 미국 국적의 백인이며 개신교 신자들이었고, 그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내가 사는 나라, 우리 마을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총으로 사람들을 쏴죽이는데 “테러리스트”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중동에 위치하고 있는 국가에 살고있는 아랍인 학생들과 무슬림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편견을 나누었다. 미국의 정치와 문화에 큰 영향을 받는 나라인 한국에서
키즈카페에 가면 처음 만난 어린이들이 금세 단짝이 되어 몇 시간이고 어울려 함께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몇 시간 전에 만난 단짝과 헤어져야 할 때 무척 아쉬워하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그 사회성에 감탄하며, 누구나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아 쉽게 어울릴 수 있다는 새삼스러운 가능성에 놀라기도 한다.어린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양육자들에게도 쉽게 다가가 질문을 하는데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거의 한 번도 어김없이 “성별”과 “나이”다.같이 사는 어린이인 다인이와 키즈카페에 가면 다른 어린이들이 젠더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다인이의 머리
잠재적 가해자“남자들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지 마세요”는 반응은 꽤나 흔하다. 성폭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에 ‘자신이 잠재적인 가해자 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는 남성 참여자가 생기는 상황이다. 수업을 진행하는 사람의 어조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사례에 등장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을 보고 그냥 하는 말이다. 그런데 성폭력 가해자의 96.2%가 남성이다(통계청, 2020). 남성이 가해자가 아닌 성폭력 사건을 찾는 게 힘들 정도다. 성별이 아닌 다른 권력관계가 개입되는 ‘특
인기드라마 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주요 주제로 다룬 10화를 본 뒤 ‘성적자기결정권의 개념이 예전보다 더 혼란스러워졌다’며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해서 이야기 해달라고 요청한 분들이 있다.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우리 사회가 성적자기결정권을 모든 사람이 보장받고 존중받아야 할 “권리”로써 이해하고 접근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능력”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혼란이다. 드라마는 작품 속 여러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성적자기결정권이 자신을 지키며 안전하게 성적행동을 할 수 있는 능
인하대에서 성폭력 사망 사건이 일어난지 불과 열흘 뒤인 지난 25일, 윤석열 대통령은 “여성가족부 폐지 로드맵 조속 마련”을 지시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30% 초반대를 기록하며 20%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지지율 반등을 위한 카드다. 여성들이 어떤 일을 경험하며 어떤 불안감을 가지고 사는지 아무런 관심이 없기에 보일 수 있는 언행이다.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건 학생 안전의 문제지, 또 남녀를 나눠 젠더 갈등을 증폭하는 건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며 젠더 기반 폭력(Gender Based Violence)에 대
최근 한 중학교에서 진로 시간에 노동인권 교육을 진행하게 됐다. 키오스크,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드론 택배 등을 주제로 소비자로서 누리는 ‘무인 서비스의 편리함’ 그리고 사장님으로서 ‘일하는 사람이 두지 않을 때 늘어나는 소득’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다. 그 후, 자신을 소비자나 사장님이 아니라 ‘일이 필요한 노동자’라고 생각하고 무인 서비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고 했다.처음에는 자신이 “그런 일”이 필요한 노동자가 될 것이라는 것을 가정하는 것조차 힘들어 했다. 그러다 “일자리가 줄어들긴 하겠네요..”라는 말이 나오긴
국제수영연명(FINA)가 트랜스여성 선수의 여성부 출전에 대해서 12세 이전에 성별적합수술을 한 사람에게만 출전 자격을 부여하는 정책을 만들었다. 그런데 12세 이전이라는 기준은 세계 트랜스젠더 건강전문가협회에서 권장하는 15-17세 보다 훨씬 빠른 나이로 ‘트랜스여성 선수의 여성부 출전을 사실상 금지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트랜스젠더 여성들이 여성부 경기에 출전하는 것은 시스젠더 여성들의 몫을 빼앗는 것 아니냐?’와 같은 트랜스여성들의 여성부 출전을 둘러싼 대표적인 질문들이 있다. 이런 질문들을 잘 들어보면 성별이분법을 당연하
지난 지선에서 한 지역구의 구청장 후보의 공약을 들으며 나는 귀를 의심했다. “우리 청소년들이 더 이상 위 지역을 빠져나가서는 안됩니다. 강남의 유명학원을 우리 지역에 유치하겠습니다.” 이 공약을 내세웠던 후보는 당선됐다.대학입시만을 위해 살도록 설계된 교육구조는 12년의 교육과정의 결과를 수능을 중심으로 줄세우기를 하고, 계급장으로 전락해버린 서열화된 대학에 줄지어 들어가도록 만든 지 오래다. 양육자의 경제적 능력 등이 영향을 크게 미치는 수능결과가 계급을 형성하고 계급이 되물림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그러나 철저한 개인주의와 시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이 구로구에 왔을 때 이주민 2세인 한 청소년이 트럭에 올라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미디어에서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넘치고 차별을 조장합니다. 이주민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라며 구로에서 자신을 드러내며 차별을 끝내기 위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주민이 많은 도시인 구로에서 이 청소년은 중국어로도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담담하지만 절실했습니다.한국계 중국인(조선족)으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일상에서 차별을 익숙한 듯
지난달 13일 JTBC 썰전라이브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이하 호칭 생략)가 긴 시간 토론을 했습니다. 탈시설에 대해 토론을 하겠다고 나선 정치인이 탈시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확인하는 참담한 자리였습니다. 모두가 포함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에는 일절 관심이 없고, 다수의 이해관계에 따라 어떻게 더 많은 표를 확보할 지에만 관심이 있는 모습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그런 정치인이 여당의 대표이고, 그런 정치인의 행보를 지켜보며 이런 글을 쓰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탈시설이 장애인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장애 인권단체들의 돈벌이 수단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산하 향유의집 폐지 과정에서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물리치료사 박씨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이하 호칭 생략)와 같은 사람들입니다.탈시설은 세계적인 흐름이며,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권고한 사항입니다. 지난 해 8월 정부는 부족한 점이 많지만 ‘탈시설 로드맵’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탈시설 로드맵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억지 주장을 문재인 정부가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은 채 수용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집회와 시위를 향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이하 호칭 생략)는 “시민들의 출근을 볼모삼는다”, “언더도그마 담론”이라 말하며 ‘소수자가 무조건 선하지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시민들끼리는 나눌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인의 발언으로는 매우 부적절할뿐더러 관점뿐만 아니라 내용 자체가 틀렸기 때문에 몇 가지 정리해보고자 합니다.우선, 장애인들의 집회와 시위가 비장애인들의 출근을 볼모 삼는 게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주의 사회가 장애인들의 불편, 장애인 배제 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자본주의
지난 3월 16일 성공회대학교 내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생긴 후 또다시 가짜뉴스를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퍼뜨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첫째로 여성을 앞세워 성소수자를 공격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LGBT 단체, 국가인권위원회, 페미니즘 단체들 그리고 여성가족부까지 모두 성소수자들의 권리만 우선시하느라 여성의 권리는 뒷전’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여성 인권과 성소수자 인권은 결코 대립하지 않으며 오히려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화장실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불과 몇십
2022년 3월 16일 성공회대학교에 ‘모두의 화장실’ 준공식이 있습니다. 2017년에 성공회대 학생회의 공약으로 논의를 시작한 이후 6년만입니다. 성공회대가 드디어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설치한 국내 1호 대학이 됩니다.2015년부터 모두를 위한 화장실 캠페인을 해온 한국다양성연구소는 2021년 한 해동안 성공회대 비상대책위원회 분들과 함께 회의하고, 자문하고, 학생들을 위해 교육을 진행하고, 학교와 재단을 향한 규탄의 목소리도 함께 내왔기 때문에 의미가 남다릅니다.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물론 이것은 시작일 뿐 여기서 멈춰서는 안
여름이 되면 남구로역에는 새벽에 매일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이고는 합니다. 하루 일해서 하루 일당을 받는 ‘안정적이지 않은 일자리’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매일 천여 명씩 모인다는 뜻 입니다. 그런데 그 중 90%의 사람들은 일을 구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합니다. 안정적이지 않은 일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보다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습니다. 한 달 내내 새벽 4시에 나와도 한 달에 6-7일 정도만 일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문제는 무슨 문제일까요? 이 문제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불러야할까요?한국에서 고등학교
혐오를 통해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만드는 천박한 자본주의와 이를 규제할 의지가 없을 뿐 아니라, 혐오를 통해 더 많은 표를 얻으려 하는 민주주의의 위기는 계속해 누군가의 삶을 폭력으로 물들게 하고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정치와 경제에 걸친 구조의 문제는 성별이분법적이고 성역할고정관념에 근거하며 이성애 중심적인 불평등한 젠더문화를 유지, 강화시키며 모두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다양한 성별, 성별정체성, 성적지향을 가진 동료시민을 낙인하고 배제하고자 했던 이 폭력의 이름은 ‘젠더에 기반한 폭력’이다.지난 2월 4일과 5일, 세상을 달
사회적 특권과 억압은 사회적 정체성에 의해서 발생하는 일이지만 결국 그것이 작동하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다. 즉, 우리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할 때 무언가를 ‘하는가’ 또는 ‘하지 않는가’가 사회적 특권과 억압을 발생시킨다. 바꿔 말하면, 사회적 정체성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적 특권과 억압을 멈출 수 있는 것도 우리다. 누군가를 대할 때 나의 언행은 의식적이기도 하지만 무의식 역시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그것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수 있지만, 가능하다.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사회적 정체성에 의해서 무언가를 하
성평등과 인권에 대한 인식이 없는데 자신의 억지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아무 말이나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보니 모순되는 주장을 동시에 하면서도 무엇이 잘못된 말인지도 알지 못한다.이들은 데이트폭력이나 성범죄 등 젠더기반폭력에 대해서도 ‘가해자 개인의 문제일 뿐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은 아무 상관이 없다’며 ‘젠더뉴트럴(gender-neutral, 성중립)하게 봐야하는데 선거철이 되니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남성을 가해자 취급하는 선동을 한다’고 강변한다.‘젠더뉴트럴’이라는 표현은 ‘성별이분법(gender binary 젠더 바이